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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나를 돌아보게 됐습니다" 남성 자성론 불붙어2016-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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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나를 돌아보게 됐습니다" 남성 자성론 불붙어(한국일보, 2016.5.23)


회사원 최모(27)씨는 22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10번 출구를 찾아 벽면에 붙은 포스트잇 속 추모 문구를 30분 넘게 꼼꼼히 훑었다.

 

그러고는 펜을 집어 들어 ‘나부터 되돌아보겠다’는 메시지를 빈 공간에 써 붙였다. ‘논리를 따지기 전 더 많이 듣고 노력하자’는 한 남성의 쪽지를 본 후였다. 최씨는 23일 “살인범이 여성 혐오자이건 아니건, 남성인 내 스스로의 언행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며 “무의식 속에 각인된 남성중심적 태도가 여성 직장 동료와 친구들, 나아가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에게까지 폭력을 가한 건 아닌지 반성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강남 20대 여성 살인사건 발생 이후 남성들 사이에 “나를 돌아보자”는 자성 움직임이 번지고 있다. 피의자 김모(34)씨의 범행으로 촉발된 여성혐오, 남성혐오 등 사회적 논란을 떠나 여성을 비뚤어진 시선으로 바라봤던 그릇된 성의식을 점검하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많은 남성들은 시민사회의 자발적인 추모 열기를 지켜보며 여성들이 느끼는 일상의 공포를 십분 이해하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그동안 여성들의 마음을 무심코 외면해왔던 데 대한 반성이었다. 직장인 박경모(31)씨는 “여자친구가 혼자 밤길을 걷고 있다고 말했을 때 걱정은 하면서도 정작 여성들이 불안해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며 “남성와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살인범의 무의식에 자리잡은 것은 아닌지 고민했다”고 말했다. 강남역 추모 현장을 3차례나 찾았다는 신모(54)씨는 “그 동안 여성 혐오, 남성 혐오 등의 젠더 이슈는 일부 여성단체와 젊은층의 전유물이라 여겼다. 나처럼 가부장적 사고를 가족에게 강요한 아버지 세대의 관습이 모여 한국사회의 차별 의식을 공고히 한 것은 아닌지 후회된다”고 고백했다.

공개적으로 ‘성차별 관념에 기반한 폭력을 멈추자’고 외치는 용기 있는 남성들도 등장했다. 20일 서울 신촌에서 열린 ‘여성 폭력 중단을 위한 필리버스터’ 에 참석한 박모(26)씨는 “올해 석사과정에 입학하면서 환영식을 할 때 여성 동료에게 걸그룹 노래를 부르고 춤추게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며 “이 역시 여성을 성적 대상화한 일종의 폭력이었다”고 돌아봤다. 마이크를 이어 받은 신모(27)씨도 “배제되기 싫다는 이유로 남성 집단 안에서 그들의 부당한 행동을 지적하지 못했던 나를 반성한다. 남성 스스로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붙은 남성들의 자성론은 자신의 가족도 언젠가 잠재적 피해자가 될지 모른다는 자각과 주체 의식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김모(38)씨는 “양성평등 개념에는 무관심했지만 두 딸과 아내를 이 사건에 대입해보니 아찔했다”며 “내 가족의 일이라 생각하니 사회 저변에 뿌리내린 불평등 문제를 속히 해소해야겠다는 조급증이 들었다”고 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강남 여성 살인사건을 계기로 적지 않은 남성들이 자신이 특권을 누렸거나 남성을 우월시하는 사회 분위기에 암묵적인 지지를 보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며 “강한 남성성을 기반으로 한 가부장제가 더 이상 여성 가족구성원을 가진 남성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공유하면서 자성론이 싹튼 것”이라고 진단했다.

신지영 한국여성상담센터장은 “남녀의 성별 구분을 넘어 인간으로서 존엄과 동등함에 대해 고민하는 남성들이 늘고 있는 점은 이번 사건이 가져온 긍정적 여파로 봐야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